청덕사(淸德祠)

청덕사(淸德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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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명칭 청덕사(淸德祠)
카테고리 민속자원 > 유형자원
 불정면 > 목도리
 자체조사
매체유형 원문
연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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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내용 및 특징

  •  충북 괴산군  불정면 목도리 385
    태조 이성계의 첫째 아들인 진안대군 이방우와 대군의 첫째 아들인 봉령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방우(?∼1393)는 부친이 혁명의 뜻이 있음을 알고 해주에 은거하다 죽고, 사후에 진안대군에 봉해졌다.

    순조 31년(1831)에 세운 이 건물의 ‘청덕(淸德)’이라는 이름은 대군이 청빈하고 덕이 있다고 하여 붙인 것으로 ‘청덕사’라고 쓴 현판을 솟을삼문에 걸었다. 솟을삼문 둘레로는 담장을 두르고 외삼문 안에는 연못을 조성하였다.후에 진안대군에 추봉되었으며, 해주의 지청사(至淸祠)에 배향되었다.

    건물 구조는 앞면 3칸·옆면 1칸 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청덕사는 조선 순조(純祖) 31년(1831)에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첫째 아들인 진안대군(鎭安大君) 이방우(李芳雨)와 대군의 장자인 봉령후(奉寧候)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청덕사로 현판을 붙인 것은 대군이 '유백이지청 태백지덕(有伯夷之淸 太伯之德)'이라 하여 '청덕'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청덕사'란 편액이 걸린 솟을삼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으며, 외삼문 안에 연못을 조성하였다.

     외정안에 1933년 후손 이태호(李泰浩, 1861-1943)가 인도교(人道敎)를 창립하고, 이를 기념하여 교리를 적어 인도교창립기념비가 있는데, 일제때 일인들이 이 곳을 참배했다고 하여 광복 후 주민들에 의해 일부가 파손되었다.

    청덕사 앞 민가 텃밭에 거북이를 닮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양이라, 이 집의 가세가 기울었다하며,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이보다 작은 거북바위가 다른 집안에 있었는데 이 집에도 우환이 잦자 담장 밑에 묻었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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