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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경(李延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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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명칭 이연경(李延慶)
카테고리 우리지역인물 > 이야기속인물
 불정면
 자체조사
매체유형 원문
연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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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내용 및 특징

  • 이연경(1488-1552):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장길(長吉), 호는 탄수(灘叟), 생원과, 현량과에 급제하고 교리를 지내고 기묘사화(己卯士禍)로 파직되어 은거하였다. 시호는 정효(貞孝)이고 괴산 불정면 삼방리 광성사에서 향사하고 있다.

    임금이 알아 준 이연경

    탄수(灘叟) 이연경(李延慶)이 교리로 있을 때 한번은 중종이 밤에 신하를 불러 경연(經筵)을 하는데 어떤 사람이 중종에게 진언하기를,
    “나라가 태평하려면, 마땅히 제일 가는 사람을 발탁하여 정승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자 이연경이 앞으로 나서며,
    “저 말은 조광조(趙光祖)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조광조는 훌륭한 사람입니다만, 경륜을 더 쌓고 인망이 두터운 뒤에 큰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라 하였는데 이 소문을 들은 조광조가 이연경을 찾아와서 울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남곤(南袞) 이빈(李蘋) 등이 기묘사화에 이르러 조광조를 몰아내고 집권한 뒤에 귀양보낼 사람의 명단 첫머리에 이연경의 이름을 써 올리니 임금이 붓을 들어 그 이름을 지우며,
    “이연경의 사람됨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 귀양을 보내지 말라.”
    고 명하였다. <동각잡기(東閣雜記)>

    이연경의 뜻을 모른 시

    용탄자(龍灘子) 이연경(李延慶)은 현량과에 급제한 군자이다. 기묘년에 파직된 후 집을 짓고 물러가 살면서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살았다. 그러다가 친척을 찾아 잠시 서울에 왔는데, 어떤 사람이 시 한 편을 던지고 갔다. 그 시에,

    서울의 티끌이 몸을 덮을까 두려운데
    그대의 절개가 사람을 놀래게 하였네.
    어두컴컴한 땅 속에 정령이 있다면
    벼슬하려고 서울에 온 걸 부끄러하리

    라 하였는데 그것은 이연경이 서울에 온 것을 벼슬하러 온 줄로 오해한 사람이 쓴 것이다. 을사년에 명종이 불렀으나 그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병진정사록(丙辰丁巳錄)>

    정순붕이 해치지 않는 이연경

    병오년에 일이 있어 서울에 갔다가 정순붕을 만나 회포를 푸는데 정순붕(鄭順朋)이 묻기를,
    “젊었을 때 유인숙(柳仁淑)과 교류하면서 절개를 지키고 의리에 죽을 사람이라 하더니 어찌하여 이번에 죽음을 당했는가?”
    하니 이연경이
    “나는 그가 죽음으로서 절개를 지켰다고 보며, 그가 잘못하여 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라 하니 정순붕이 얼굴빛이 변하여 돌아갔다. 그 때 옆에 있던 선비 유정(柳貞)이 놀라,
    “호랑이 앞에서 춤 추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인데,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여 스스로 화를 불러 들인단 말이오?”
    하니, 이연경이 웃으면서,
    “정순붕은 교활한 사람이라 제 자손을 위하여 유인숙을 죽였지만, 나를 죽여봤자 ‘친구를 죽인 놈’이라는 이름만 얻지 저한테 이득이 없으니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네.”
    라 하였는데, 과연 정순붕이 이연경을 해치지 않았다.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해동잡록(海東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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