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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화(朴枝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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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명칭 박지화(朴枝華)
카테고리 우리지역인물 > 이야기속인물
 청안면
 자체조사
매체유형 원문
연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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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내용 및 특징

  • 박지화(1513-1592): 정선박씨(旌善朴氏)의 시조, 자는 군실(君實), 호는 수암(守菴),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 현감을 지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운산에서 자살하였다. 명종 때 으뜸가는 학자로 청안 귀계서원에 제향되었다.

    뜻이 깊은 시를 짓는 박지화

    학관(學官) 박지화(朴枝華)는 호가 수암(守菴)이라는 선비이다. 그는 시를 전공하지 않았으나 가끔 흥이 나서 짓는 시를 보면 격이 높고 뜻이 깊어서 감히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그가 지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읊은 시’

    고운은 당나라 과거에 급제한 진사시니
    처음부터 신선이 될 생각은 없으셨으리
    삼한에는 만촉(蠻觸)의 싸움이 벌어지고
    사해에는 속세의 더러운 먼지 자욱하니
    영웅의 앞 일을 어찌 알 수가 있으련만
    진결은 본시 전하지 않는 법이라
    고운선생이 가신 뒤 쌍학만 남아있으니
    맑고 고운 바람이 오백년을 전해오누나

    라 하였는데 이 시를 음미해 보면, 헤아리기 어려운 깊은 뜻이 있다.
    <제호시화(霽湖詩話)>

    시법에 맞는 만사를 써 준 박지화

    박지화는 어떤 사람이 만사를 써달라고 하니

    구만리 높은 하늘에 고래를 타고 떠나가
    삼천년 오랜 세월에 학을 타고 돌아오리

    라고 써 주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시법(詩法)에 꼭맞는 글이다. <송계만록(松溪漫錄)>

    섭생(攝生)을 잘한 박지화

    박지화는 섭생을 잘하고 항상 방에만 있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문 밖으로 나오지 않고 나이 80에도 정력이 보통사람과 달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근 물가로 피난을 가서 나무를 꺾어 두시(杜詩),

    백구는 원래 물에서 자고
    무슨 일에 슬픔이 있으랴

    라는 한 귀를 써놓고 물에 몸을 던져 죽으니 사람들이 ‘수선(水仙)’이라 하였다.<대동기문(大東奇聞)>

    후대 명가들에게 추앙을 받는 박지화

    박지화는 학문이 높고 뛰어나며 지조가 맑고 깨끗하여 송계(松溪) 이인기(李麟奇)가 박지화를 추모하여,

    양지 바른 곳에 오동나무 있고
    연못 뜰에는 푸른 대나무 있네
    잎새는 봉황새의 집으로 쓰이고
    열매는 봉황새 먹이로 쓰였는데
    오동이 죽고 대 열매 안 맺으니
    이제 봉황은 어디서 자고 먹을지

    라는 시를 지었으며 지봉(芝峯) 이수광(李晬光)은
    “유학을 가르쳐 실효가 있었던 사람은 오직 박지화 뿐이다.”
    라 하였는데 후대 명사들이 추앙하기를 이와 같이 하였다. <여지도서(與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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