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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태(禹種泰)의 선비 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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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명칭 우종태(禹種泰)의 선비 기질
카테고리 우리지역인물 > 이야기속인물
 청안면
 자체조사
매체유형 원문
연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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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내용 및 특징

  • 우종태는 덕망과 학문을 갖추고 일생 동안 학문을 수양한 인물이다. 우종태와 관련된 일화는 여러 가지가 전해온다.
    1894년(고종 31년) 일본군에게 패한 청나라 패잔병 일부가 청안면에 들어와 난동을 부릴 때였다. 우종태는 나이 16세의 어린 소년이었으나 어린 나이답지 않게 책과 집안의 살림살이를 정돈하여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보광산으로 피하였다. 이때에 그의 어머니께서는 잉태하여 아기를 낳을 때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께서 놀라실까 염려하여 귀를 막고 눈을 가려 드리고 있었더니 청병이 물러가 다행히 무사하였다.
    또 다른 일화로 1896년(고종 33년)에 의병이 각처에서 일어날 때 혼란한 틈을 타 불량배 수십 명이 집에 들어와 아버지에게 돈과 곡식을 내놓으라고 협박하였다. 그는 우두머리에게 아버지 대신 자기가 희생하겠다고 하였다. 우두머리는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이집 아들이 비록 나이는 어리나 진실로 효자로다.”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또 한 번은 아버지께서 병을 얻어 위독하게 되었다. 그는 밤마다 목욕재계하고 하느님께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빌며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그러나 병은 점점 악화되어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병을 고쳐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아버지의 입으로 흘려 넣어 드렸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를 모시고 3년 동안 잠시도 상복을 벗지 않았으며 탈상 후에는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다니며 부모를 잃은 슬픔을 달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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