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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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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명칭 보광사 석조여래좌상
카테고리 어메니티자원 > 지역명소
 사리면
 자체조사
매체유형 원문
연계사업 연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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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내용 및 특징

  • 보광사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법당의 석불 부처님은 원래 봉학사 금당(金堂)에 모신 주불이었는데 조선 헌종 때 충청도 관찰사 김소(金素)의 묘를 쓰고자 절을 헐고 부처님의 머리를 절단하여 버렸다고 한다.


    지금부터 150여 년 전 보광산 산 밑 하도 부락에 사는 손씨(孫氏)가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낯이 익은 노승이 찾아와서 “나는 보광산에 있는 부처이다. 그런데 100여 년 동안 흙 속에 묻혀 있다. 지금 때가 되었으니 나를 파내어 모시도록 하라. 나는 지금 보광산 절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양지바른 언덕바지에 있다.” 하고는 사라졌다. 그러나 손 씨는 유생(儒生)이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중의 꿈’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튿날 밤에 또 꿈을 꾸었다. 어제와 다름없이 노승이 와서 같은 말을 하고 사라졌다. 이날도 ‘중의 꿈’으로 돌려버렸다. 사흘째 되는 날 밤에 또 꿈을 꾸었는데 또 노승이 찾아와서, “내가 그대에게 두 번이나 부탁을 하였는데 말을 아니 들으니 야속하다. 내 말을 들으면 자손이 번성하고 영화가 올 것이니 부디 내말을 들어다오.” 하고 사라졌다. 꿈에서 깬 손 씨는 ‘내가 미련한 놈이지 세 번씩이나 현몽을 해도 말을 안 들을 수가 있나’ 하고 이튿날 아침에 집안 식구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알려 10여 명의 동조자를 얻었다. 그중 같은 유생인 우 씨(禹氏)와 경비를 마련하여 꿈에서 이르던 곳에 가서 땅을 파보니 목이 부러진 석불이 나왔다. 산이 험하고 골이 깊어 집으로 운반할 수가 없어 그곳에 바로 세우고 제례(祭禮)를 지냈다. 보광산에 부처님이 나왔다는 말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기뻐하였으며 손 씨와 우 씨는 그 후로 재산이 일고 자손이 번창하였다고 한다.


    1936년 김봉삼(金奉三) 스님이 이곳에 절을 고쳐 짓고 양지바른 언덕바지에 있는 석불을 법당에 안치했다. 이때 손 씨와 우 씨 등 수백 명이 와서 돌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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