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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하고 떠나가는 부연(浮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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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명칭 “쐐”하고 떠나가는 부연(浮蓮)
카테고리 민속자원 > 지역역사성
 청안면
 자체조사
매체유형 원문
연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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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내용 및 특징

  • 󰡔신증동국 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16권에 청안지방 연혁을 보면 이 고장을 청당현이라 하였다. 서북부의 고을은 청당면(현 읍내리)으로 불렀으며 마을을 교촌 또는 향교촌, 정자촌으로 불렀다.
    교촌(향교말)은 이 마을에 향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이고 향교촌이라 부른 것은 옛날 이 고을 선비들이 성현의 뜻을 따르고자 산(안자산: 顔子山), 내(증자천: 曾子川)의 이름 등 사성(四聖)을 따른 것이다. 정자의 이름을 붙여 ‘정자촌’이라고도 하였다.
    고을 이름을 청당면이라고 한 것도 교촌부락 앞에 연못이 있으니 연못 ‘당(塘)’자를 넣어 그렇게 부른 것이며 연못에는 연(蓮)이 성(盛)하게 자랐다 하여 연못의 이름을 연당이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일명 ‘연소(蓮沼)’라고도 함.).
    청안면 마을이 생기면서 함께 생겨난 이 연당에는 물 위에 부연이 자라나 꽃이 피게 되면서 꽃 속에 얽힌 수많은 애환(哀歡)들이 전해오고 있다.
    부연이 성하게 자라 꽃이 만발하면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선비와 유학자가 많이 생겨나 높은 벼슬에 오르고 꽃이 피지 않는 해에는 마을에 어려운 일만 생기게 된다고 한다. 연당이 내려다보이는 북쪽 산기슭에는 청안향교(조선 초기 건립)가 세워져 수많은 유림들이 생겨났고, 청당면은 날로 성하여 선비들과 유림들이 연당가에 모여앉아 연꽃을 보며 시를 읊고 성현의 꿈을 키웠다. 또 향교 오른쪽 언덕 위에는 성현의 뜻을 생각하며 정신수양의 거처로 정자를 건립하니 그 이름을 연화대라 하였다. 고을이 성하게 되고 여러 벼슬에 오른 선비가 50여 명이 넘게 되어(전국에 그곳밖에 없음.) 조정에 알려지니 최명길의 손자 최석종이 연화대가 있던 곳에 사마소를 건립(숙종 29년)하여 임금의 어명을 행하였다. 그 후 연화대는 없어지고 이 자리에 사마소만 남게 되었다.
    이 꽃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미리 알고 있는 꽃이다. 나라가 어지럽고 혼란할 때는 “쐐-” 하고 소리를 내며 연당을 떠나갔으며 나라가 평안하고 발전할 때가 되면 다시 소리를 내면서 이곳으로 옮겨와 꽃을 피웠다. 이 마을 사람들은 밤중에 연이 오고가는 “쐐-” 하는 소리를 듣고 나라의 운명을 헤아렸다.
    꽃이 떠나갔던 병자호란, 임진왜란, 일제 36년 동안 연당의 밑바닥은 물마저 메말라 없어지고 잡초만 무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45년 해방이 되던 해 맑은 물이 가득 찬 연당에는 8월의 연꽃이 만발하여 해방의 기쁜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6.25 사변, 4.19 의거, 5.16 혁명.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던 당시도 꽃은 떠나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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