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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 유적

자원명칭-카테고리-지역-중요도-출처-매체유형-연계사업
자원명칭 우암 송시열 유적
카테고리 민속자원 > 유형자원
 청천면
 자체조사
매체유형 원문
연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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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내용 및 특징


  • 청천 우암 송시열 유적은 화양동 계곡 안에 있는 화양서원 터와 만동 터를 중심으로 암서재, 읍궁암, 애각사적, 묘소와 신도비 등 송시열과 관련된 사적들로 구성되었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은거하였던 곳에 세워진 서원으로써 조선시대 학자들의 결집장소였으며,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준 중국 명나라 황제 신종,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써 유지가 잘 남아있다. 암서재는 송시열이 만년에 화양동에 은거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읍궁암은 효종의 승하로 북벌이 좌절되자 효종의 기일마다 이곳에 올라 통곡하였다고 전한다. 이 외에도 화양동에는 충효절의, 비례부동 등 많은 애각사적이 산재해 있어 송시열의 북벌애국사상과 민족자존정신이 깃든 유적의 성격과 조선성리학의 중심지로서 일제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되고 왜곡된 사적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성리학 중심지 중 한 곳인 우암 송시열 유적이다. 송시열(1607-1689)은 조선 후기의 성리 학자이자 문신으로 조선 효종(재위 1649-1659)을 도와 북벌정책을 추진하는 등 자주적인 정치를 펼쳤으며, 주자학의 대가로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이 잠시 머물렀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이 많이 모였던 장소이다. 만동묘의 자리는 중국 명나라 황제인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던 곳이다. 만동묘 주변에는 송시열과 관련된 암서재, 하마비, 읍궁암, 송시열 무덤 및 신도비 외에 암서재 근처의 암벽에 <충효절의>, <비례부동>이란 글을 새긴 곳이 많이 있다. 송시열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정신이 깃든 곳일 뿐 아니라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로서, 한때는 일제에 의해 파괴되었던 곳이다. 민족정기회복을 위한 교육 장소로서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곳이다.
     
    화양 서원지는 우암 송시열이 은거하였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으로써 조선시대 학자들의 결집장소였으며, 만동묘지는 중국 명나라 황제,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서 유지가 잘 남아 있고, 동 화양서원지 및 만동묘지 주변에는 송시열과 관련된 암서재, 하마비, 읍궁암, 송시열 묘소 및 신도비 외에 암서재 주변의 암벽에 충효절의, 비례부동 등 많은 애각사적이 산재해 있어 송시열의 북벌애국사상과 민족자존정신이 깃든 곳일 뿐만 아니라 조선성리학의 중심지로서 일제에 의하여 철저하게 왜곡 파괴되었던 곳으로서 민족정기 회복을 위한 교육장소로서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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