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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솟대 신앙-마을공동체신앙 입니다. 장승솟대 신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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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명칭 장승솟대 신앙-마을공동체신앙 입니다. 장승솟대 신앙 입니다
카테고리 어메니티자원 > 우리지역고유문화
 괴산읍
 자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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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내용 및 특징

  • 괴산군에서 아직까지 구석기시대의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된 바는 없으나, 인접한 청원군․제원군 등지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 유적이 발굴된 점으로 보아 이곳에서도 구석기시대의 것이 발굴된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의 유물, 유적은 적석리와 칠성면 도정리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신석기시대에서부터는 괴산군 일대에 사람이 거주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문헌상으로는 마한(馬韓)의 금물노국(今勿奴國)과 잉근내국(仍斤內國) 등이 괴산 일대에 위치한 것으로 비정되며, 삼국시대에 들어와서는 삼국의 접경지대를 이루어 삼국간의 치열한 쟁탈지를 이루었다.

    고려시대에는 괴주(槐州_라 불렸고, 조선시대에 들어 m 와 태종 3년(1403)에 괴산(槐山)으로 개칭하여 군(郡)으로 승격되었다가 이후 관할구역의 증감이 있었다. 그리고 1914년의 행정구역개편을 거쳐 최근에까지 다시 몇 번에걸친 해당 지역의 변동후 1979년 괴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른다.

    마을 공동체신앙

    현재 괴산군에 전해지는 마을 공동체신앙은 크게 산신제, 국사제9國師祭), 서낭제, 장승제, 동구제(洞口祭), 거리제, 정주제(井主祭)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중 장승제에 대해서는 본 사례조사편에서 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장승제를 제외한 마을 공동체신앙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산신제는 괴산군의 진산(鎭山)으로 관념되어 오는 금산(錦山)에서 이미 조선시대에서부터 관(官)에서 제사를 모신 일이 있는데, 이러한 관행제(官行祭)는 현재 군수가 제주가 되어 죽령산신(竹嶺山神)에게 괴산군의 발전과 평안을 비는 죽령산신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외 괴산군에서 각 마을 단위로 지내는 산신제가 “산지〔山祭〕”, “동신제(洞神祭)”, “동제(洞祭)”, “산고사(山告祀)” 등으로전해지고 있다.(아래표 참조).
    국사제(國師祭)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淸安面 三月初 縣首史率邑人 迎國師夫婦 於東面長鴨山大樹 入于邑內
    用巫覡具酒食 錚鼓宣轟 行神祀於縣衙及名廳 選至餘日後 基神於樹 而間二年行之
    라고 하는 기록을 통해 조선 후기 이전에서부터 전해져왔음을 알 수 있다.

    이 국사제는 지금도 청안면(淸安面) 운곡리(雲谷里)에 마을 공동제로 전해지고 있는데, 매년 1회씩 음력 정월 14일 자정을 기하여 제주와 축관 두명에 의해 육류(肉類)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소산제(素山祭)로 모시고 있다. 소산제로 모시는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즉 “옛날 삼국시대에 한 덕이 높은 국사 부부가 이곳을 지나다가 임신한 부인이 입덧이 나서 가재를 잡아먹자 살생을 하였다고 이 장학산 산정의 나무 아래 오시어 좌정화불(坐定化佛)하여 이곳의 신이 되었는데 그 국사님의 높은 덕을 추모하여 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살생을 꺼리는 신이기 때문에 육류를 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인데, 이는 후세의 부회담인 것 같고, 다만 여기의 국사제에 불교가 어느 정도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이런 설화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보아진다. 운곡리에서 국사제를 모시는 목적은 풍농․동리의 평안․무사평온․무병의 기원 등인데 참고로 운곡리 국사제의 축문을 게재하여 둔다.

    維歲次 干支 正月干支朔 十四日干支 本洞選屬 幼學 某 敢昭告于
    國師之尊 㑀維尊師 大天宣化 鎭我一洞 居生康吉 六畜興旺
    百穀豊穗 實賴孔休 修陳菲禮

    서낭제는 괴산군의 다른 공동체신앙과 유사한 제의 방식을 보이고 있지만, 신체(神體)에 있어 돌무더기나 수목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이 다소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서낭은 성황(城隍)이라고도 하는데, 괴산군에서의 성황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槐山郡 城隍祠 在縣東二里
    淸安縣 城隍祠 在縣西五里

    이라 하여 괴산군과 청안현의 치소에 성황사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현존하는 서낭이 돌무더기나 수목 등의 자연신체임에 비해, 조선시대의 성황은 사우(祠宇)를 지속 그 안에 위패를 봉안하였음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로, 마을 공동체신앙으로서의 서낭과 조선시대 관행제로서의 성황제의 연관성 문제는 앞으로의 과제이다.또한 탑신제(탑제)는 서낭의 돌무더기와 유사한 원탑형 돌무더기이지만 서낭이 다소 무작위적으로 돌을 쌓아올린 형태임에 비하면, 원탑은 의도적으로 기단부에서부터 차곡차곡 돌을 쌓아올리고 탑 속에서 신물(神物)을 넣는 점등에서 양자간에 차이가 나므로 형태상 구별을 요해야 할것 같다. 아래에서는 괴산군의 마을 공동체신앙을 도표화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괴산군에서 아직까지 구석기시대의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된 바는 없으나, 인접한 청원군․제원군 등지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 유적이 발굴된 점으로 보아 이곳에서도 구석기시대의 것이 발굴된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그러나, 신석기시대의 유물, 유적은 적석리와 칠성면 도정리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신석기시대에서부터는 괴산군 일대에 사람이 거주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문헌상으로는 마한(馬韓)의 금물노국(今勿奴國)과 잉근내국(仍斤內國) 등이 괴산 일대에 위치한 것으로 비정되며, 삼국시대에 들어와서는 삼국의 접경지대를 이루어 삼국간의 치열한 쟁탈지를 이루었다.

    고려시대에는 괴주(槐州_라 불렸고, 조선시대에 들어 m 와 태종 3년(1403)에 괴산(槐山)으로 개칭하여 군(郡)으로 승격되었다가 이후 관할구역의 증감이 있었다. 그리고 1914년의 행정구역개편을 거쳐 최근에까지 다시 몇 번에걸친 해당 지역의 변동후 1979년 괴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른다.

    마을 공동체신앙

    현재 괴산군에 전해지는 마을 공동체신앙은 크게 산신제, 국사제9國師祭), 서낭제, 장승제, 동구제(洞口祭), 거리제, 정주제(井主祭)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중 장승제에 대해서는 본 사례조사편에서 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장승제를 제외한 마을 공동체신앙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산신제는 괴산군의 진산(鎭山)으로 관념되어 오는 금산(錦山)에서 이미 조선시대에서부터 관(官)에서 제사를 모신 일이 있는데, 이러한 관행제(官行祭)는 현재 군수가 제주가 되어 죽령산신(竹嶺山神)에게 괴산군의 발전과 평안을 비는 죽령산신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외 괴산군에서 각 마을 단위로 지내는 산신제가 “산지〔山祭〕”, “동신제(洞神祭)”, “동제(洞祭)”, “산고사(山告祀)” 등으로전해지고 있다.(아래표 참조).
    국사제(國師祭)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淸安面 三月初 縣首史率邑人 迎國師夫婦 於東面長鴨山大樹 入于邑內
    用巫覡具酒食 錚鼓宣轟 行神祀於縣衙及名廳 選至餘日後 基神於樹 而間二年行之
    라고 하는 기록을 통해 조선 후기 이전에서부터 전해져왔음을 알 수 있다.

    이 국사제는 지금도 청안면(淸安面) 운곡리(雲谷里)에 마을 공동제로 전해지고 있는데, 매년 1회씩 음력 정월 14일 자정을 기하여 제주와 축관 두명에 의해 육류(肉類)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소산제(素山祭)로 모시고 있다. 소산제로 모시는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즉 “옛날 삼국시대에 한 덕이 높은 국사 부부가 이곳을 지나다가 임신한 부인이 입덧이 나서 가재를 잡아먹자 살생을 하였다고 이 장학산 산정의 나무 아래 오시어 좌정화불(坐定化佛)하여 이곳의 신이 되었는데 그 국사님의 높은 덕을 추모하여 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살생을 꺼리는 신이기 때문에 육류를 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인데, 이는 후세의 부회담인 것 같고, 다만 여기의 국사제에 불교가 어느 정도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이런 설화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보아진다. 운곡리에서 국사제를 모시는 목적은 풍농․동리의 평안․무사평온․무병의 기원 등인데 참고로 운곡리 국사제의 축문을 게재하여 둔다.

    維歲次 干支 正月干支朔 十四日干支 本洞選屬 幼學 某 敢昭告于
    國師之尊 㑀維尊師 大天宣化 鎭我一洞 居生康吉 六畜興旺
    百穀豊穗 實賴孔休 修陳菲禮

    서낭제는 괴산군의 다른 공동체신앙과 유사한 제의 방식을 보이고 있지만, 신체(神體)에 있어 돌무더기나 수목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이 다소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서낭은 성황(城隍)이라고도 하는데, 괴산군에서의 성황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槐山郡 城隍祠 在縣東二里
    淸安縣 城隍祠 在縣西五里

    이라 하여 괴산군과 청안현의 치소에 성황사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현존하는 서낭이 돌무더기나 수목 등의 자연신체임에 비해, 조선시대의 성황은 사우(祠宇)를 지속 그 안에 위패를 봉안하였음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로, 마을 공동체신앙으로서의 서낭과 조선시대 관행제로서의 성황제의 연관성 문제는 앞으로의 과제이다.또한 탑신제(탑제)는 서낭의 돌무더기와 유사한 원탑형 돌무더기이지만 서낭이 다소 무작위적으로 돌을 쌓아올린 형태임에 비하면, 원탑은 의도적으로 기단부에서부터 차곡차곡 돌을 쌓아올리고 탑 속에서 신물(神物)을 넣는 점등에서 양자간에 차이가 나므로 형태상 구별을 요해야 할것 같다. 아래에서는 괴산군의 마을 공동체신앙을 도표화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이 표를 통해 개략적이나마 괴산군에서는 주로 산신제가 마을공동제로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산신제당의 형태에 있어서도 신목이나 암석등 자연물을 주로 그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있어, 가옥식으로 된 신당에 비해 비교적 선행하는 제당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괴산군의 공동체신앙이 초기적인 신앙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서낭제는 청천면 강평리 외에는 전슨되는 곳이 보이지 않을 벙도로 이곳에서는 매우 미약하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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