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만리의 장승제

귀만리의 장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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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명칭 귀만리의 장승제
카테고리 어메니티자원 > 우리지역고유문화
 청천면 > 귀만리
 자체조사
매체유형 원문
연계사업 연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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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내용 및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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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괴:산군청천면귀만리歸晩里
    조사지개관

    청천면 서남부에 위치한 귀만리는 동으로 신월리新月里)와 평단리平丹里), 서쪽으로는 강평리江坪里), 남쪽은청원군淸源郡), 북 쪽은 후평리後坪里)와 인접해 있다. 귀만리라고 하는 마을명의 유래에는 우암 송시열선생이 이곳에 터를 잡으려고 돌아 왔으나 이미 죽산竹山) 박씨가 자리를 잡고 있었음으로 늦게 돌아왔다는 뜻의 귀만歸晩)에서 나왔다는 유래담과 용대천龍大川;경북 상주군에서 발원이 굽이쳐 흐르는 안쪽이 된다 하여 “굽이안” 이라 한 것이 변하여“귀만이”로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장승은 마을 입구에 놓여져 있는데 이곳은 마치 병의목과 같은 형상이라 하여 “병목 거리” 라 한다. 본래 이곳에 가옥 몇채가 있었으나 지난1980년 수해때 유실되고 현재는 전답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귀만리 입구에는 말이 물을 마시는 형상의 명당 자리라고 하는 “갈마음수산渴馬飮水山)”이있다.

    이곳 귀만리의 장승제는 이미 20년전쯤에 폐지되어 현재 지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장 승은 마을 입구에 2기의 돌장승이 현존해 있고 또 마을 노인들의 제보로 전에 치제되 었 던 양상을 어느정도 채록할 수 있었으므로 이에 근거하여 아래에서 장승제의 내용을 약술 해 보고자 한다.

     

     위치와 형태

    귀만리의 석장승은 사각형 석주石柱) 형태로 전면에 눈과 코를 양각으로 처리하였고 입술 은 음각으로 간략히 그 부위만 표현 하였다. 전면에서 볼때 좌측의 장승에는 머리 위에 건巾)을 표현 한듯한 모양의 모자가 있고, 턱밑은 반원형으로 깎아내어 얼굴과 몸체를 구별 하였으며 몸체에는“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고 새겨져있다. 바로 옆의 장승은 민둥머리 형태에 얼굴은 달걀형이고 입술은 한일(一)자로 다물고 있다.

    본래 이민둥머리 형태의 우측 장승은 바로 맞은편에 있었으나 1978년 “효열부은진송씨 정려비孝烈婦 恩津宋氏旌閭碑)”가 이곳으로 들어서게 되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진 것이라 한다.  좌측의 석장승은 높이가118㎝, 둘레103㎝, 안면길이28㎝이고 우측의 석장승은 목부위에서 머리까지의 높이가52㎝, 둘레97㎝, 안면길이43㎝이다 장승의 제작 연대는 미상이다

    관 련의례

    앞서 말한바와 같이 귀만리의 공동제는 현재 더 이상 행해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노 인정에 모였던 분들이 들여준 말에 의하면 이 곳의 마을 제사는 음력 정월대보름날 저녁 무렵에 지냈다고 한다. 미리 제일 일주일 전쯤 이장의 주관하에 마을회의를 열어 “지관” 제관으로 축관․유사․고양주각1인씩을 선발한다.

    제관의 조건 은생기복덕과 나이 등을 고려하여 가급적 노인분들 중에서 집안에 임산부나 그 외의 부정이 없는 자로 정한다. 일단 제관으로 선출되면 반드시 해야 했으며 제의를 마칠때까지 제관들은 술․담배․버린고기 등은 일절 금해야 하며 외부 출입이나 부인과의 합방은 물 론입밖으로 싫은소리․노한소리․언짢은 소리도 내서는 안된다. 고양주와 유사는 7일정성에 축관은3일 정성을 드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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